오늘2017. 12. 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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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친애하는 임영순 여사님께❤️

할머니 올해 우리 일본가기로 했는데
할머니 힘들지 않은 코스로 계획해서 온천도 가고
좋은 호텔에서 잠도 자고
예전에 할머니 집 앞에서 돗자리 깔고 밤하늘의 별보면서
아빠 뒷담도까고 엄마 흉도보고ㅋㅋ
도란도란 얘기나눴던 것 처럼 올해 그러기로 했는데
할머니 혼자 더 좋은 낙원으로 가버렸구만!

조금만 기다려주시지
할머니, 명절만큼은 할머니랑 함께 있어야하는데
엄마랑 다투다 아빠까지 시끄러지는거 너무
지겨워서 집 나가서 목욕탕에 갔었어요.

목욕탕이나 시장은 명절마다 할머니랑 갔던 곳인데
올해는 개인 플레이 해버렸네..
그 날 그래도 나 할머니랑 삼촌이랑은 저녁은 같이 먹어야 도리다 싶어서 때밀고 나와서 친구 버리구 집에 들어 온거였어요.

그냥 다 싫었어 그 땐 왜그랬는지 몰라.
속상하기도하고 그 날 맘도 안좋아서 술마시고 들어와서
할머니 잠 방해한 것도 미안하구..

왜 하필 할머니랑 함께 한 마지막 명절이 그렇게밖에
못했나 몰라 너무 서럽고 한이되요.

얼마 후 창공이 오빠 결혼식날 할머니 너무너무 곱고 예쁜 모습 봐서 내가 우리 할머니 너무 자랑스러웠어요.

창공이 오빠 결혼을 축하하고자 하는 마음에 축가를 준비한 것도 있지만
우리 가족들 앞에서 정식적으로 내가 공연하는거 보여주는 자리라서 더 열심히 준비했어요.
그래도 내가 춤추고 노래부르고 연기하는거 할머니께 짧게나마 보여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좋았는지 몰라. 그 때 도와준 동기들 챙기느라 또 할머니랑도 얘기 많이 못하고 참 뒤늦게 아쉬운게 너무 많네요.

할머니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게 어머니란 의미를 알게 해주신 분인 것 같아요.
가족들에게 받은 상처를 유일하게 이해해주시고
날 보듬어주신 나의 멘토선생님이었어요.

사촌들 다 남정네들 사이에서 손녀 저 한명뿐이라 은근히 소외됬는데 할머니가 더 챙겨주시고 나를 여자라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든든하게 항상 내 옆에서 지켜 주셨던 것 같아.

할머니, 생각나시죠. 어릴 때 제가 할머니랑 같이 할아버지 산소에 가면서 연애소설 읽고있던건데 그거 하나로 지금까지 독서광이라며 동네방네 칭찬하고 다니시고 할머니가 묘에 난 잡초 다 뽑았으면서 내가 다 정리했다고 야무지다고 공을 내게로 돌리시구.. 진짜 울할머니 참..

할머니가 참 보고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대충 얘기했을 때도 할머니는 다 이해해주시고 그런 사람 만나라며 연애상담도 해주셨는데.. 그 때 결심했어요. 그 사람 다시 만나면 바로 할머니께 달려가 할머니가 해주신 밥 셋이서 맛있게 먹고, 김장도 뚝딱 도와드리고 잠깐 눈 부쳤다가 이 앞 별이 내리쬐는 시골길 코비데리고 산책갔다 오겠다고..

할머니 보고싶다요!!!
지난 봄에 나 많이 힘들었잖아요. 부산에서 올라온지 얼마 안된 한참 벚꽃 만개하던 날에 할머니랑 신길온천에서 같이 목욕한 날이요.
그 때 할머니랑 있으면서 저 많이 힘냈습니다.
그 온천에서 저 5살 때,
할머니가 나 머리 감겨주다가 거품이 눈에 들어가서
그 곳 목욕탕을 한바퀴 돌면서 살려달라고 울면서 뛰쳐다녔는데 20년 후에 내가 할머니 등밀어주면서 그 얘기하니까 감회가 어찌나 새롭던지....할머니 보고싶어요.
할머니댁 갈 때마다 항상 준비되어있는 요구르트도 보고싶고 항상 준비되어있는 할머니의 새 잠옷들도 그리고 갓 빨아놓은 이불들도 덮고싶고 설날 때마다 은행에서 미리 뽑으신 새돈들도 할머니 책장에 있는 책들 염주 하나하나 할머니랑 다시 함께 그 공간으로 가고싶어요. 할머니 너무 고마워요. 아무것도 아닌 저를 항상 최고의 사람으로 만들어주셨던 할머니.

제사향이 코 끝에 닿으면 조상님께 제사드리는 저희 뒤에서 함께했던 내음새로 익숙해져 있는데 할머니는 이제 제 앞에 계시네요. 기꺼이 팔십 만빵 딱 채우고 가는구만 역시 울할머니답다. 할머니 이제 제 절 받으시고 이제 아픔과 걱정없는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세요. 할머니 사랑해요. 팔순 축하드립니다.



Posted by 정양갱